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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동량지재의 요람, 한문학연구소<溫知堂>(이츠대전 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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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지당

작성일 17-06-01 15:11

조회 15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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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량지재의 요람, 한문학연구소<溫知堂>
    좋은터(吉地)에는 상서로운 기운(瑞氣)이 어리고, 이에 사람들의 뜻이 어우러지면 고매한 삶의 향기가 피어나기 마련이다.
    순수학문연구소 온지당(溫知堂)은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제1의 명소로 꼽은 계룡산 학하리 자락에 마련된 배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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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고지신(溫故知新)' 지혜 담긴 동서양 두 채의 건물
    계룡산록이 자욱히 동쪽으로 휘돌아 도덕봉과 금수봉으로 이어지다가 수통골 눈시린 여울을 품에 안고 잘깃잘깃한 산자락을 풀어 헤친 해토머리 아늑한 중턱에 자리잡은 ‘온지당’을 찾은 것은 겨울 햇살이 눈부신 1월 하순이었다.
    깔끔하게 포장된 고샅길로 접어들자 잿빛 기와 가지런한 돌강담이 이마에 차오르는가 싶더니 아담한 입구가 발길에 닿는다. 온지당의 출입문인 원일문(原一門)이다. 대문 양 옆에 붙어 있는 현판 글귀.
    출입수불차문 이행필수대도(出入誰不此門 履行必須大道)
    “이문을 출입하는 누구라도 모름지기 대도를 이행하라.”
    대문을 들어서자, 널찍한 뜨락 한가운데 인고의 세월을 견뎌온 듯한 멋스런 소나무 한 그루가 의연한 자태로 두 채의 건물과 마주하고 있다. 너댓 개의 계단석 위쪽에 친근한 자태로 우뚝 선 한옥에는 ‘온지당(溫知堂)’이라는 현액이 걸려 있고, 그 아래로 청명한 하늘을 가득 담고 있는 넓은 유리창들이 벽면을 대신한 노출 콘크리트 현대식 건물이 뜨락을 감싸듯 들어 서 있다. 흡사 두 건물이 오누이처럼 가지런히 어깨를 맞댄 풍경이다.
    한옥과 철근 콘크리트 건물. 이질적이라고 여길 법한 두 개의 건물이 이렇게도 조화로울 수 있다니.... 전통과 현대, 신구의 어울림이라는 표현조차 오히려 진부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배움터를 마련한 설립자의 안목에 새삼 탄복하면서 '온고지신'에서 유래한 '온지당'이라는 배움터의 이름이 차용을 벗어난 심오한 실용의 경지를 담고 있음을 실감한다.
    온지당의 본채인 한옥은 건평 20평 규모로 2003년 8월에 완공되었는데, 방 두 칸과 대청마루, 사워실, 화장실 등을 갖추고 있어 연구생들의 복지시설로 쓰이고 있다.
    생활관인 50평 규모의 초현대식 노출 콘크리트 건물은 1,500여권의 장서와 컴퓨터, 에어컨, 냉장고 등의 설비를 마련하고 학습과 연구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만물에 공적이 미치는 실질 학문의 기반 마련
    온지당을 둘러본 후 생활관으로 들어서자, 단아한 인상의 이숙희 교수(충남대학교 한문학과)가 취재진을 반긴다.
    온지당의 실질적인 운영자이자 관리자인 이 교수가 한문한 연구소인 온지당을 개원한 것은 1994년 이다.
    유성의 한 오프스텔에서 첫 발자욱을 뗀 온지당은 한문교육을 위한 학습주간지로는 선구로 꼽히는 <온지서당>을 발간해 무료 배부하고, 동양학관련 세미나와 연구 모임을 개최하는 등 세인의 이목을 모으는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오다 2001년 현재의 장소로 이전해 새로운 웅지를 펴게 되었다.
    이 교수의 안내를 받아 생활관 안으로 들어섰다.
    일순 댓돌에 부서지는 낙숫물 같은 소리가 귓전에 감긴다. 글 읽는 소리다.
    강의실 여기저기에서 수 십 명의 연구생들이 저마다의 자세로 글 읽기에 여념이 없다.
    한문학서당 온지당에 왔음을 피부로 느끼는 순간, 입구에 걸린 상량문이 별도로 걸려 있는 까닭을 의아스러워하자 이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동양학의 근간인 한문학이 오늘날 그 깊이와 실용의 도를 읽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온지당은 한문학 전공자를 중심으로 전문 번역 능력과 학문의 깊이를 두루 갖춘 전문인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학습 연구기관이지요.
    상량문에는 이러한 온지당의 설립 취지가 함축적으로 담겨져 있습니다."
    상량문을 지은 사람은 아당 이성우 선생이다. 충남대, 연세대, 대전대에 출강하면서 민족문화추진회 강사, 청유학당원장이기도 한 아당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한문학 분야의 석학이다.
    이 교수가 이따금 특강 형태로 강의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온지당의 운영과 관리에 필요한 살림살이를 챙기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면, 아당 선생은 연구생들의 교육과 강의를 전담하고 있다.
    이숙희 교수와 뜻을 같이 해 온지당의 운영에 참여한 아당 선생은 상량문에 온지당이 지향해야 할 지평과 한문학이 나아갈 바를 밝혀 놓았다.




    4_copy.jpg우선 온지당은 '오늘날의 세태가 서양의 물에 기울어지고 거꾸러져서 동양의 문을 가볍게 보아 헌신짝 처럼 버려도 애석하지 않은 분위기에 빠져 있음'을 개탄하며 이러한 '상례와 세속을 벗어나 한데 어울려 학문과 덕행을 닦는 공동의 집'으로 마련되었음을 천명하고 있다.
    따라서 온지당의 들보는 '동으로는 백만 도시 대전의 배움터를 서로는 계룡의 신성한 세계를 펼치는 청운의 뜻을, 남으로는 엄한 가르침의 쉼없음을, 북으로는 충남대를 비롯한 국학의 부흥을, 위로는 온 나라를 공고히 할 충효와 검약을, 아래로는 만고에 이어질 뿌리의 중요함'을 다짐하여 놓여졌음을 강조한다.
    온지당이 어느 특정 지역에 자리한 배움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천지사방, 유 ·무형의 역사를 아우를 지식과 실천의 요체로 우뚝 설 것임을 겸유한 의지로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방명자연파어이하 천석분명위어이목
    "아름다운 이름은 저절로 멀리 가까이 퍼질 것이요,
    샘과 돌이 분명이 드러나듯 세인의 이목에 빛날 것이다."
    '공리와 공론의 풍조를 배제한 학문을 우뚝 세워 백성과 만물에 그 공적이 미치게 하리라'는 온지당의 웅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상량문의 한대목이다.





    자족보다는 이타를 중시하는 전문학자 양성이 목표
    덕명동에 터를 잡은 온지당은 개원 이후 다양한 교육, 학술, 문화 사업을 펼치고 있다.
    2001년부터 방학을 이용해 4주동안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를 습득, 암송하는 단기과정과 3개월~2년에 걸쳐 사서와 삼경(시경, 서경, 주역)을 심도있게 학습, 암송, 연구하는 장기과정을 꾸준히 실시해 지금까지 140여명의 연구생들이 온지당에서 학문에 몰두했다.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해 함께 숙식을 하며 학문에 매진하기 때문에 월 20만원의 최소 운영비를 받고 연구생들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현재 온지당의 규모로는 매 기수마다 20여명 정도가 가능한 인원이다.
    그런데 온지당이 알려지면서 신청자가 쇄도해 올 겨울 7기생의 신청을 받을 때는 하루만에 경쟁률이 2:1이 넘어 연구생을 선정하는데 고심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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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지당에서 학문에 몰두하는 연구생은 한문학 전공자가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한의예과나 연구교수, 전통문화학교 종사자 등도 포함 되어 있다. 나이나 성별에 제한을 두거나 특별한 선정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온지당의 연구생이 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심사(?) 기준이 있다.
    현학을 목적으로 하거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기 보다는 배우고 익힌 것을 어떻게 쓸 수 있는 사람인가에 주안점을 둔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자족보다는 이타를  중시하는 온지당의 설립이념을 느끼게 하는 사례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동량지재들이 피워내는 학문의 열기를 담뿍 느낀채 온지당 뜨락을 나섰다.
    원일문을 나서려는 순간, 문 안쪽에 걸리 또다른 현판에 눈길이 머문다.

    선성당일탄석 후학만세경모
    "옛 선인께서 당시에 안타까이 탄식하심을 후학은 만세에 깊이 새기어라."

    온지당을 들어설 때 느꼈던 대도의 가르침에 대한 의지를, 온지당을 나서는 순간 겸허한 실천과제로 다짐하라는 경구였다.
    겨울 햇살이 황톳빛 텃밭 위를 헤살거리는 고샅길을 돌아 나오다 고개를 돌려 온지당 건물을 바라보니, 동서양이 아름답게 어울린 건물 외양 위로 자란자란 글 읽는 소리가 꿈결처럼 퍼져나가는 듯하다.
    문득 극동아시아 대전에서 발현한 '온지학파'의 서기가 이 혼돈의 시대에 향기로 퍼져나갈 날이 머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온지당:(042)825-7825 www.onjidang.org
    글_최예영 사진_윤기중, <온지당>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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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숙희 교수
    "서생이 아닌 선비가 되어야지요"
    온지당의 실질적인 운영 관리자인 충남대학교 한문학과 이숙희 교수.
    대학에서 한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라면 으레 엄숙한 분위기를 연상하기 십상이지만, 이숙희 교수는 그런 선입견을 단번에 불식시킨다.
    멋스런 의상과 생기 넘치는 말투, 화사한 미소를 잃지 않는 이 교수의 선비론.
    "멋과 풍류를 모른 채 글에만 몰두하는 것은 서생입니다. 학문의 깊이와 풍류의 멋을 고루 갖추어야 선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교수는 온지당에서 과녁빼기만큼 떨어진 곳에 산다. 90년대 온지당을 개원하면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게 된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이 교수는 인근에 살림집을 마련했다.
    온지당 설립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한 부군 장정민 씨(유승기업 대표)는 처음엔 서당 바로 옆에 거처를 두는 것을 마뜩찮게 여겼다고 한다.
    그런데 온지당의 운영성과를 느끼고는 현재 대학에 다니는 막내아들 용석 군을 온지당 프로그램에 참여시킬 만큼 적극적이 되었다.
    이 교수는 틈이 나는 대로 온지당에 들러 청소도 하고 연구생들의 불편을 거두는 등 안살림꾼을 자처하면서 사제지간을 뛰어넘는 학문적인 동지애를 다져나가고 있다.
    이 교수는 최근 한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저서 < 한시, 바로보기 거꾸로보기 Ⅰ,Ⅱ>를 펴내 학계뿐 아니라 한시를 낯설게 대해온 한글세대에게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총 2권으로 구성된 새 저서는 최치원을 비롯해 김시습, 허난설헌, 이규보 등 우리나라 쟁쟁한 문장가들의 작품을 다루고 있는데, 한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던져준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루함을 벗어난 현대 선비의 품격을 실천하고 있는 이숙희 교수는 온지당만이 가지는 학풍을 가꾸어가는 주인공이다.

    It's Daejeon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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